성공 사례

신동아 2014년 9월호 특집칼럼

작성자 속뜻사전
작성일 20-11-10 15:42 | 310 | 0

본문

한국판 ‘딕셔너리 프로젝트’를 아십니까? 
무상급식보다 무상 사전(辭典)을… 
최영록 
한국고전번역원 대외협력실장 / 前 성균관대 홍보전문위원 
 
● 초등 3년 이상에게 국어사전 기부운동 
● “학습 • 독해능력 향상지름길” 
● 서울 • 함평 • 원주에서 교육청 • 동문 •독지가 동참 
● 미국은 1995년 장학단체 탄생…연 240만 명 혜택

지난해 11월 8일 오전 11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초등학교인 서울 종로구 재동초등학교(1885년 개교)에서 작지만 뜻 깊은 행사가 열렸 다. ‘제1회 동문 • 지역어른 국어사전 기증식’이 그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59명, 4학년 56명, 5학년 43명, 6학년 38명 등 모두 196명에게 아담한 국어 사전(‘초중교과 속뜻학습 국어사전’, 전광진 편저, LBH교육출판사 발간) 한 권씩을 선물한 것. 기증에 동참한 동문 16명 중에는 53회 강지원 변호사와 예비역 소장도있었고, 어머니 권유로 동참했다는115회 중학생도 있었다. 
이 학교 박인화 교장은 “어휘력 증강을 통한 학력 향상과 인성교육의 지름길을 국어사전에서 찾았다. 무슨 과목이든 사전을 옆에 두고 모르는 단 어가 나오면 바로바로 사전을 펴 개념을 확실히 이해하도록 지도하겠다” 라며 “학부모 운영회와 원로 동문 만남의 자리에서 이런 취지를 말씀드리니 반응이 좋았다. 특히 지역 어른들의 동참이 고마웠다. 앞으로도 쭉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1인1사전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 23일 강원도 원주 단구 초등학교에서도 같은 행 사가 있었다. 고향이 원주인 재미( 在美)과학자 신승일 박사(74 • 서울대 국제 백신 연구소 대표를 지낸 생명의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미국 앨버트 아이슈타인대 교수로 북한 어린이들에게 뇌염백신을 무상공급하는 데 앞 장섰다)가 3~6학년생 351명에게 국어사전을 기증한 것. 
여기에는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한국 사전 프로젝트’를 펼치는 사무국장 윤재웅(52) 씨의 숨은 공로가 있다. 윤 씨는 20년여 전 화가 오지호(1905∼ 1982)의 논문 ‘국어에 대한 중대한 오해’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한자 교육과 사전 활용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윤 씨가 우연히 알게 된 신 박사에게 국어사전 기부운동 취지를 설명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이에 동감 한 신 박사가 기꺼이 동참한 것. 한국로터리 강원지구 최준영 총재도 올해부터 사전 기부운동 후원을 약속했다. 
사전 기부운동의 역사는 이보다 몇 년 더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성동구 행현초등학교 원정환(59) 교장은 2008년 중랑구 신묵초교에 재직할 때 지역구청의 교육지원 예산을 받아 국어사전 700여 권을 구입해 3학년 이상 전 교실에 비치하고 학생들이 모든 교과과목 시간에 사전을 활용토록 했다. 학생과 학부모의 반응이 매우 좋아 3분의 1이 집에서도 같은 사전을 구 입해 공부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유별난 사전 사랑 

원정환 교장은 행현초등학교로 옮긴 2011년에도 성동구청의 지원을 받 아 국어사전 1000권을 구입, 3학년 이상 전 학생에게 한 권씩 배부해 공부하게 하고, 학년이 올라가면 후배들에게 손때 묻은 사전을 물려주게 했다. 또한 ‘행현 단어장’을 만들어 3학년생 600단어, 4학년 900단어, 5학년 1200 단어, 6학년은 1500단어를 적도록 하고, 이를 잘 지킨 학생에게는 ‘단어공부 인증서’를 주었는데 효과가 만점이었다. 
국어사전 활용교육의 ‘원조’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전라남도 함평교육 지원청 김승호(58) 교육장의 유별난 ‘사전 사랑’과 ‘사전 활용교육’은 함평 군 내 초등학교를 넘어 인근 군 지역으로도 확산되어 ‘꽃’을 피우고 있다. 

그는 1987년 번스타인의 ‘언어사회이론’을 읽고 나라별 학력 격차의 이유를 알게 되면서 사전 교육을 강화하는 것만이 ‘강한 나라를 만드는 길’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학생들의 학력 수준은 국어사전을 얼마나 이용하고 있고, 교과서의 용어들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에 달렸다고 본 것이다. 일선 학교 교사와 교장, 도교육청 정책기획담당관 등을 역임하면서 ‘국어사전 상시 보기’ 정책을 추진했다. 

2012년 3월 함평교육지원청 교육장으로 부임한 이래 가장 정열을 쏟은 일도 자기 주도 학습력 신장을 위한 초등학교 사전 보급 운동이었다. 함평 군 내 손불초교 등 초등학교 11곳과 중학교 8곳 학생 2000명에게 사전 한 권씩을 배부했다. 손불초교는 동문인 건설사 대표가 3학년 이상 후배 58명과 교사 10명에게 사전을 기증했다. 김 교육장은 “올해에는 로터리클럽 광주지구(총재 김보곤)에서 적극적으로 이 운동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혀 왔다”라며 “3학년 때부터 사전을 끼고 사는 교육은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것과 마찬가지”라고말했다. 

김 교육장은 최근 관내 중학교 학생팀이 ‘전국 초중교 디베이트 대회 ’에서 38개 팀 중 우승을 차지한 것도 평소 사전을 통한 토론 교육의 영향이 틀림없다고 확인했다. 김 교육장의 활약상은 어린이신문에도 게재됐다. 

이러한 사전교육의 효율성을 연구한 결과도 있다. 경인교육대학 부속초 교 정주희 교사는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 현장 교육 연구 보고대회’ 국어 분과 초등부에서 ‘우리말 한자어 LBH교수학습 프로그램 적용을 통한 창 의적 어휘력 신장’이라는 연구 보고서로 1등상을 받았다. 여기에서 말하는 LBH(Learning by Hint) 교수학습법은 전광진 성균관대 교수가 주창하는 이론으로, 2음절 이상의 한자어(복합어)의 의미를 설명하는데 각각의 글자 (형태소)에 담겨 있는 암시적 의미(hint) 정보, 즉 힌트를 최대한 분명하게 밝혀줌으로써 이해력 • 사고력 • 기억력 등을 높여주는 학습법을 말한다. 한 마디로, 기존의 정의에 의한 교수법은 무작정 암기를 원칙으로 하지만, 힌 트에 의한 교수법은 ‘이해→사고→기억’을 하게 하는 것으로 단순 주입식 설명을 지양하는 것이다. 

딕셔너리 프로젝트 
LBH교수학습 프로그램을 적용한 후 평가 결과를 분석하며 여러 가지 시 사점을 얻었다는 정 교사는 “평소 학습능력이 보통 이하인 학생들이 어휘에 관심을 갖고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게임과 놀이를 즐기는 과정에서 어휘력이 많이 향상돼 스스로 만족해했다”며 “학생들이 우리말에 무지하다는 자각과 함께 앞으로 우리말 공부를 계속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적절한 학습준비와 학습안내를 통해 학습 훈련이 되면 3학년 학생 들도 모둠별 협동학습을 훌륭히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사전 기부 운동’과 비슷한 일은 일찍이 미국에서 벌어졌다. 1992년 한 할 머니가 국어(영어)사전 50권을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1995년 출범한 ‘딕셔너리 프로젝트’(www.dictionaryproject.org) 운동이 그것이다. 미국에서 지금까지 1825만여 명의 학생이, 2012년 한 해에만 239만여 명이 사전을 선물 받았다고 한다(참고로 미국의 초등 3년생은 417만여 명이다). 사실, 사전을 받은 우리의 꿈나무들이 공부에 재미를 느끼고 어휘력, 독해력 향상을 통해 학력이 크게 신장된다는데 어느 누가, 어느 기관이 후원을 꺼려 하겠는가. 
그들의 이론에는 초등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몇 번이고 되새겨 봐 야 할 ‘그 무엇’이 있다. 학습은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16년 동안의 학업 과정 중 초등학교 3학년이 분수령이 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1, 2학년은 ‘Learning to read(읽을 줄 알기 위해 배우는 것)’ 단계이고, 3학년 이후 대학까지 ‘Reading to learn(지식 축적을 위해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 단계인 데, 이 단계에서는 ‘국어(영어)사전’이 가장 강력한 학습도구라는 것이다. 이 단체의 홈페이지 첫머리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 프로젝트를 후원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강력한 학습도구’인 사전을 제공하는 것이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며,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가장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이들은 이에 덧붙여 독해 능력에 대한 네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말하고 있다. 첫째, 독해 능력은 국가 경제의 성공과 번영에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둘째, 범죄율과 실업은 독해 능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 셋째, 성인의 21∼ 23%는 글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낮은 수준의 추론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넷째,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의 37%가 책을 읽을 줄 알아도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종이사전의 재미와 질감 
여기에서 또 하나의 의문은 전자사전, 컴퓨터 사전, 스마트폰 사전 시대에 종이사전이 정말 인기를 끌 수 있을지다. 이에 대해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컴퓨터가 있는 학생도 종이사전을 활용하면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종이사전은 휴대가 편리할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어린이들이 자기만의 책을 갖게 되면 뭔가 찾아보고 싶은 탐구심이 생긴다. 어떤 낱말을 찾아 뜻을 알게 되는 즐거움을 스스로 느끼고, 같 은 페이지에 있는 또 다른 매혹적인 단어들을 덤으로 만날 수 있다.” 

한마디로 디지털 사전과 종이사전의 찾는 재미와 질감( 質感)이 천지 차이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에는 무언가를 알고 싶어 하는 탐구심이 극에 달한다는 통계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스스로 뜻을 알아가는 즐거움과 같은 페이지에 있는 또 다른 매혹적인 단어들을 덤으로 만나는 희열을 맛보지 않은 학생들은 알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들은 결론적으로 “글을 읽고 뜻을 아는 독해능력은 특권이 아니라 기본권”이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독해능력을 조기에 그리고 적기에 기르기 쉬운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사전을 보급하는 일이 ‘중요하고도 시급 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사전을 손에 끼고 산다는 것은 단어 의 의미, 철자, 발음, 문법, 문맥을 익히는 데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의사소통, 학업능력, 진로 및 자기계발과 자신감을 갖게 하는 장점이 있다. 고은 시인은 교도소에서 국어사전 한 권을 통독하면서 ‘만인보’라는 시를 구상했다고 한다. 
 
한편 이 프로젝트에 기부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세금 면제 혜택을 받으 며, 기증 사전 안에 기부자 이름이 적힌 라벨이나 메시지도 넣을 수 있고, 자원봉사자들이 해당 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직접 사전을 전달 할수도 있다. 또한 후원하고 싶은 사람들이 사전 선물을 받은 학교와 아직 받지 못한 학교 현황을 한눈에 볼 수있도록 웹사이트에 자료를 제공한다. 

현재 미국 로타리클럽은 전체 기부운동의 60%를 지원한다고 한다. 홈 페이지에는 사전을 선물 받은 학생과 학부모의 감사편지가 넘쳐나는데, 한결같이 독해와 작문능력이 향상되었다는 등 장점을 나열하며 후원자들에 게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그들의 최종 목표도 명시되어있다. 모든 학생에게 (student by student), 모든 지역에서(state by state), 모든 나라에서(country by country) 사전 프로젝트의 ‘꽃’을 활짝 피우겠다는 야심찬 계획말이다. 

이해위주 교육 
2008년부터 종이사전 활용교육과 관련한 재능기부 특강을 100회가 넘게 하고 있는 전광진 교수는 “지금까지 암기 위주의 교육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이해 위주의 교육이 되어야 우리나라 교육이 산다. 노벨상 수상자 같은 큰 학자를 키우려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사전을 활용한 교육법이 직효라고 생각한다. 우리말의 70% 이상이 한자어이고, 모든 학문의 핵심 어휘가 한자어인 현실에 읽을 수는 있어도 뜻을 모르니 수학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초등학교 한자교육의 사교육 열풍은 하루빨리 공교육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방과후 학습이라는 또 하나의 굴레보다는 수업시간에 한자어가 나올 때마다 한자의 속뜻을 가르치는 게 교육입국( 敎育立國)의 첩경”이라고역설했다. 
아무튼, 수년 전부터 겨자씨처럼 움트기 시작한 초등학교 3학년 이상 학 생들에게 국어사전을 기부하는 운동이 이 글을 계기로 민간인의 후원이 넘처나기를 기대해 본다. 또한 장학기관이나 교육지원청 등 국가기관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 국어사전을 비롯한 교구( 敎具)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국 6900여 개의 초등학교에 확산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한편으로는, 한국로타리 등 사회봉사단체나 민간기관 등을 중심으로 사 전기부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나, 머지않아 전국의 초등학교 학생들 이 국어사전을 학습에 활용하는 붐이 일면 좋겠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독해와 작문 능력 등 탄탄한 학습력을 기르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적으로 우 수한 인재들이 속속 탄생해 대한민국과 우리말과 글을 한층 빛낼 날이 결코 이루지 못할 꿈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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