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3(수) 한자와 명언 走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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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9. 3(수)
한자와 명언(2193)
走 狗
*달릴 주(走-7, 5급)
*개 구(犬-8, 3급)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 종종 화려한 언변에 현혹되거나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기 쉽다.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는 데 참고가 될 만한 명언을 찾아보자.
먼저 ‘왜놈들의 주구가 돼 가지고 온갖 아첨다하고…’의 ‘주구’ 같이 한글로만 쓴 것으로는 의미 분석이 불가능하니 한자로 ‘走狗’라 쓴 다음에 비로소 형태소(글자)를 샅샅이 분석하여 완전히 소화한 다음에!
走자의 상단은 大(대)의 변형으로 달리는 모습을 본뜬 것이고, 하단은 ‘발자국 지’(止)의 변형이다. 종합하자면, 열심히 달리는 사람의 발자국을 통하여 ‘달리다’(run)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狗자는 ‘강아지’(puppy)를 뜻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개 견’(犬)이 의미요소로 쓰였고, 句(글귀 구)는 발음요소로 뜻과는 무관하다. 작은 개, 즉 강아지는 狗라고 했고, 다 큰 개는 犬이라 했다는 설이 있다.
走狗(주:구)는 ‘사냥꾼 앞에서 달리는[走] 개[狗]’가 속뜻인데, ‘남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도 쓰인다. 앞잡이 노릇하여 크게 성공한 인물은 없다.
맨 앞에서 언급한 명언을 아래에 소개해 본다. 일찍이 장자가 갈파한 명언이다. 장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능력이나 재주보다는,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진실된 마음과 품성임을 강조한 말이다.
“개는 잘 짖는다고 훌륭하다 할 수 없고,
사람은 말 잘한다고 현명하다 할 수 없다.”
狗不以善吠爲良, 구불이선폐위량
人不以善言爲賢. 인불이선언위현
- 莊子
● 필자 : 전광진, 성균관대 명예교수
▶ [추신] 소설 삼국지에 말 잘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 수없이 많이 등장합니다. 인공지능(구글 제미나이)에게 대표적인 인물을 들어 보라고 했더니, ‘읍참마속’의 주인공을 예로 들어 이야기를 구성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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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속의 화려한 언변과 비극적인 최후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보겠습니다.
유비가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제갈량의 손을 잡고 간절히 말했습니다. "마속은 말이 실속보다 앞서니 크게 쓸 인물이 아니오. 승상은 부디 그를 경계하시오."
하지만 유비의 통찰력 깊은 이 유언을, 제갈량은 당시에는 깊이 새기지 못했습니다. 제갈량은 마속의 뛰어난 언변과 재능을 높이 평가했기에, 유비의 경고를 "아마도 노환으로 인한 일시적인 우려일 것"이라 생각하며 넘겼습니다. 마속은 그렇게 제갈량의 총애를 받으며 촉한의 젊은 인재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이후 제갈량이 북벌을 개시하며 전략적 요충지인 가정(街亭)을 지킬 장수를 찾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모두가 망설일 때, 마속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섰습니다. "제가 가정을 지키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승상! 저는 병법을 빠삭하게 꿰고 있으니, 반드시 적을 물리치겠습니다!"
마속은 거침없는 화술로 자신의 병법 이론을 펼쳐 보였습니다. 그는 "산 위에 진을 치면 높은 곳에서 적을 내려다볼 수 있어 유리하다"는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웠고, 제갈량은 그의 열변에 결국 마음을 돌려 중요한 임무를 맡겨주었습니다.
하지만 마속의 유창한 말은 결국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습니다. 위나라의 명장 장합은 산 아래에서 마속의 군을 포위하고 식수 공급로를 끊어버렸습니다. 물 한 모금 없는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마속의 군대는 싸움 한번 제대로 못하고 허무하게 무너졌습니다.
이 패배로 인해 제갈량의 1차 북벌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마속의 화려한 언변 뒤에 숨겨진 오만함과 실속 없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제갈량은 군율을 바로 세우기 위해, 그리고 유비의 임종 유언을 떠올리며 비통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신이 경계하라는 스승의 말을 무시했다가 벌어진 참담한 결과를 두고, 그는 오열하며 마속의 목을 베는 비극적인 결단을 내립니다.
이처럼 마속은 말만 번지르르한 인물이 진정으로 중요한 순간에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유비의 통찰과 제갈량의 비극적인 선택, 그리고 허세와 오만함의 대가가 한데 어우러져 《삼국지연의》의 가장 인상 깊은 교훈 중 하나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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